앗! 나의 오진
서울 속편한내과 원장 내과 전문의 송치욱
손아래 동서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가족들을 뒤에 두고 세상을 떠나지도 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충남 대덕 연구단지 연구실에서 실험에 바쁜 시간 중에서도 틈만 나면 인천부모님 댁을 찾던 효자였던 그였다.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 한번은 가족모임에서 그는 지나가는 말투로 당시 내과 교수였던 내게 "대변이 가늘고 변보기가 영 불편하다"고 호소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장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변에 혹시 피가 묻어 나오는지. 체중이 줄지는 않았는지를 되물었다. 대변에 피가 묻어 나온 적은 없고 체중은 근래 들어 수영을 열심히 하다 보니 5-6kg정도 빠졌다는 것이었다. 집안에 대장암 환자가 있거나 그런 병력도 없고. 나이도 워낙 젊어 나는 그 자리에서 '과민성 대장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 후, 별 생각 없이 헤어졌다. 그 후 몇 달이 지나고 송년회로 어수선한 겨울 저녁, 겁에 질린 처제의 전화 한 통은 평생 내 마음에 짐을 지워주는 회한을 남겨주었다.
결국 동서는 점점 대변보기가 힘들어서 대전에 있는 방사선과의원에서 대장조영술 검사를 받아보았더니. 이미 직장의 대부분이 암으로 막혀있더라는 것이었다. 암이 어떻게 손쓸 방도도 없이, 진행될 만큼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암이라니.
그때 대장내시경검사를 시행해보지 않았던 죄책감이 나를 한동안 괴롭혔다. 같은 상황이라도 가족에게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의사인 내가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던 실수였다.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은 변굵기가 가늘어지거나, 변에 피가 묻어 나오거나,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 교대로 나오거나, 원인 모를 빈혈이나 체중 감소 등이다.
그런 증상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먼저 대장내시경검사나 대장조용술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현대의학이 많은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암에 관해서는 조기발견만이 가장 확실하게 완치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대장암은 대부분 '폴립'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대장 용종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장내시경을 3-4년마다 정기적으로만 시행하면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과민성대장'이라는 진단도 이 같은 검사를 통해서 기타 대장질환이 없는 경우에만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에게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라고 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이처럼 엄격한 진단의 잣대에 관대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